overview of the northern territories画像

1북방 영토 문제란

북방 영토란, 홋카이도 본섬의 북동쪽 바다에 이어지는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섬, 구나시리섬 및 이투루프섬으로 구성된 섬들을 말하며, 단 한 번도 외국의 영토가 된 적이 없는 일본 고유의 영토입니다.
1855년 2월 7일, 일본과 러시아 간 매우 평화적이고도 우호적인 형태로 ‘러일 화친 조약’이 체결되었고, 북방 4개 섬인 이투루프섬과 이투루프섬의 북쪽에 위치한 우루프섬 사이에 당시 자연스럽게 성립된 국경이 그대로 확인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8월 9일, 소련은 당시 아직 유효(1946년 4월까지 유효)했던 소련 일본 중립 조약에 위반하여 대일 참전하고,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 후인 같은 해 8월 28일부터 9월 5일 사이에 북방 4개 섬의 모든 곳을 점령했습니다. 당시 4개 섬에는 소련인은 한 명도 없고, 일본인은 4개 섬 전체에 약 1만 7천 명이 살고 있었으나, 소련은 1946년 4개 섬을 일방적으로 자국령으로 ‘편입’하고, 1948년까지 모든 일본인을 강제 퇴거하였습니다. 그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소련, 러시아에 의한 불법 점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북방 영토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는 체결된 평화 조약이 아직 없습니다.
그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일본과 러시아 양국간 교섭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시라도 빨리 북방 4개 섬의 귀속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달성된 여러 합의와 여러 문서를 기초로, 앞으로도 러시아와의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교섭해 나갈 방침입니다.

2북방 영토 문제에 대한 홋카이도의 입장

북방 영토는 홋카이도 행정구역의 일부로, 북방 영토 문제의 해결을 행정상 최중요 과제로 자리매김하고, 조기 해결하기 위해 일본과 러시아 간 교섭을 뒷받침하며, 북방 영토 문제 해결을 위한 환경을 정비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3북방 영토 문제의 경위(영토 문제 발생까지)

(1)러일 화친 조약

일본은 러시아보다 앞서 북방 영토를 발견・조사하고, 늦어도 19세기 초에는 4개 섬의 실효적 지배를 확립했습니다. 19세기 전반에는 러시아 측도 자국 영토의 남쪽 한계를 우루프섬(이투루프섬 바로 북쪽에 위치한 섬)으로 인식했습니다. 일본과 러시아 양국은 1855년, 러일 화친 조약에서 당시 자연스럽게 성립된 이투루프섬과 우루프섬 사이의 양국 국경을 그대로 확인했습니다.

(2)가라후토 지시마 교환조약

일본은 가라후토 지시마 교환조약에 의해 지시마 열도(=이 조약에서 열거된 슘슈섬(지시마 열도 최북단의 섬)부터 우루프섬까지 18개의 섬)를 러시아로부터 넘겨받는 대신, 가라후토 섬 전체를 러시아령으로 인정했습니다.

(3)포츠머스 조약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으로 러시아로부터 가라후토(사할린)의 북위 50도선 이남 부분을 할양받았습니다.

(4)대서양헌장(1941년), 카이로 선언

1941년 8월, 미국 대통령과 영국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 측의 지도 원칙이라고도 할 대서양헌장에 서명하고, 전쟁으로 영토의 확대를 도모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습니다(소련은 같은 해 9월에 이 헌장에 참가를 표명).
또한, 1943년 카이로 선언은 이 헌장의 방침을 확인하며, ‘폭력과 탐욕에 의해 일본이 탈취한’ 지역 등으로부터 일본은 추방당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단, 여기에서 말하는 ‘일본이 탈취한’ 지역에 북방 4개 섬이 해당되지 않는 것은 역사적 경위를 감안해서 판단해 보아도 명백합니다.

(5)포츠담 선언(1945년 8월 수락)

포츠담 선언은 ‘폭력과 탐욕에 의해 일본이 탈취한 지역’으로부터 일본은 추방당해야 한다고 한 1943년 카이로 선언의 조항은 이행되어야 하며,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와 연합국이 결정하는 여러 섬들에 국한될 것임을 규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아직 유효했던 소련 일본 중립 조약을 무시하고 1945년 8월 9일에 대일 참전한 소련은 일본의 포츠담 선언 수락 후에도 공격을 계속하고, 같은 해 8월 28일부터 9월 5일 사이에 북방 4개 섬을 불법 점령했습니다(참고로 4개 섬 점령 시, 일본군은 저항하지 않았고 점령은 완전히 무혈로 이루어졌습니다).

(6)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의해 포츠머스 조약으로 획득한 가라후토의 일부와 지시마 열도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북방 4개 섬은 지시마 열도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소련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는 서명하지 않았으므로 동조약상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4소일・러일 간 주된 평화 조약 체결 교섭

(1)소일 공동선언(1956년 10월(서명), 12월(발효))

하보마이 군도 및 시코탄섬을 제외하고는 영토 문제에 대해 소련과 일본 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평화조약 대신에 전쟁 상태 종료, 외교관계 회복 등을 정한 소일 공동선언에 서명했습니다.
→평화조약 체결교섭 계속에 동의했습니다
→하보마이 군도 및 시코탄섬에 대해서는 평화조약 체결 후, 일본에 넘겨줄 것에 대해 동의했습니다.

(2)소일 공동성명(1991년 4월) (가이후 도시키 총리,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소련 측은 4개 섬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적고, 영토 획정 문제의 존재를 처음으로 문서로 인정했습니다.

  • 海部総理大臣・ゴルバチョフ大統領の写真
(3)도쿄선언(1993년 10월)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 보리스 옐친 대통령)
  • (가)영토 문제를 북방 4개 섬 귀속에 관한 문제로 자리매김,
  • (나)4개 섬 귀속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양국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한다는 수순을 명확하게 하고,
  • (다)영토 문제를 1)역사적・법적 사실에 입각하여 2)양국 간 합의로 작성된 여러 문서 및 3)법과 정의의 원칙을 기초로 해결한다는 명확한 교섭 지침을 표명했습니다.

또한, 도쿄선언은 소련과 일본 간 모든 조약 그 외 국제 약속이 러시아와의 사이에서 계속해서 적용될 것을 확인했습니다.

  • 細川総理大臣・エリツィン大統領の写真
(4) 이르쿠츠크 성명(2001년 3월) (모리 요시로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 (가)1956년 소련 일본 공동선언을 교섭 과정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하고, 그 법적 유효성을 문서로 확인했습니다.
  • (나)또한, 도쿄선언을 근거로 하여 4개 섬의 귀속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는 러일 공통 인식을 재확인했습니다.
  • 森総理大臣・プーチン大統領の写真
(5)러일 행동 계획 채택에 관한 공동성명 및 러일 행동 계획
  • (가)공동성명으로 두 정상 간 4개 섬 귀속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 조약을 가능한 한 조기에 체결함으로써 양국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해야 한다는 ‘결의’를 확인했습니다.
  • (나)‘러일 행동계획’에서 1956년 소일 공동선언, 1993년 도쿄선언, 2001년 이르쿠츠크 성명 3개의 문서가 구체적으로 열거되었고, 그 외 여러 합의와 합쳐 앞으로의 평화 조약 교섭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러일 파트너십 발전에 관한 공동성명(2013년 4월) (아베 신조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 (가)공동성명에서 전후 67년을 거쳐 러일 간 평화조약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양측의 입장 차이를 극복하고 2003년 공동성명 및 행동계획에서 해결해야 함이 확인된 문제(4개 섬의 귀속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함으로써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는 결의를 표명했습니다.
  • (나)양측이 상호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평화조약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며 협상 과정을 가속화하기로 했습니다.
(7)푸틴 대통령 방일(2016년 12월) (아베 신조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양국 정상 둘이서만 장시간에 걸쳐 평화조약 문제에 대해서 솔직하고 깊이 있는 논의를 한 결과,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양국 정상의 진지한 결의가 보였습니다.
또한, 북방 4개 섬에서 특별한 제도 아래 공동 경제활동을 하기 위한 협의 개시에 합의했습니다.

(8)싱가포르에서의 정상회담(2018년 11월) (아베 신조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1956년 선언을 기초로 하여 평화 조약 교섭을 가속화’한다고 합의했습니다.

  • 安倍総理大臣・プーチン大統領の写真
(9)러일 정상 전화회담(2021년 10월) (기시다 후미오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2018년 싱가포르에서의 합의를 포함하여, 지금까지의 양국 간 여러 합의를 바탕으로 확실하게 평화 조약 체결 협상을 이어갈 것을 확인했습니다.

5북방영토 반환요구 운동

북방영토 반환요구 운동은 1945년 12월 1일, 당시 안도 이시스케 네무로마치장이 연합국 최고사령관에 대해 진정서를 취합한 것이 시초라고 알려졌습니다. 이후, 북방영토의 본래 거주자를 비롯, 4개 섬과 인접한 네무로 사람들의 영토반환 요구 목소리는 이윽고 홋카이도 전역, 더 나아가 전국 각지로 전개되었습니다.
매년 2월 7일은 ‘북방영토의 날’로 정해져 있습니다. 1855년 2월 7일 러일 화친 조약에 의해 양국의 국경이 이투루프섬과 우루프섬 사이에 평화롭게 정해지고, 북방 4개 섬이 일본의 영토로서 처음으로 국제적으로도 명확해진 날이기에 이 날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매년 2월과 8월은 ‘북방영토 반환운동 전국 강조 월간’으로, 전국 각지에서 집회, 강연회, 패널전 등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64개 섬 교류, 자유 방문 및 북방 성묘

러일 양측의 영토 문제에 관한 법적 입장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다음의 3가지 북방 4개 섬 방문의 틀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1)4개 섬 교류

북방 영토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상호 이해의 증진을 도모하고, 영토 문제의 해결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일본 국민과 북방 4개 섬에 거주하는 러시아인 사이의 여권・사증을 없애는 상호 방문 사업입니다. 1992년부터 실시되고 있습니다.

(2)자유 방문

인도적인 견지에서 본래 섬에 살던 주민 및 그의 가족인 일본 국민에 의한 최대한으로 간이화된 북방 영토 방문 사업입니다. 1999년부터 국가 지원을 받아 섬 주민 단체가 실시하고 있습니다.

(3)북방 성묘

인도적 관점에서 행해지고 있는 신분증명서에 의한 성묘 사업입니다. 1964년부터 홋카이도가 북방 4개 섬의 총 52개 묘지에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7북방 4개 섬에서의 공동 경제활동

2016년 12월 러일 정상회담에서 양측 정상은 북방 4개 섬에서의 공동 경제활동에 관한 협의를 개시하는 것이 평화조약의 체결을 향한 중요한 한 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관해 상호 이해하였습니다.
2017년 9월 러일 정상회담 결과, 조기에 임하는 5건의 프로젝트 후보*를 특정하고, 2019년에는 양측 쓰레기 처리 전문가의 왕래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일본인 관광객에 의한 구나시리섬 및 이투루프섬으로의 첫 관광 파일럿 투어가 실시되었습니다.
*(1)해산물 공동 증양식, (2)온실 야채 재배, (3)섬 특성에 따른 투어 개발, (4)풍력발전 도입, (5)쓰레기 감량 대책